경허연보 Biography
장소
연대

행적

전라북도 전주 자동리
1849(1)|
  • 출생, 전라북도 전주 자동리, 부친 송두옥(宋斗玉), 모친 밀양 박씨
  • 八월 二十四일, 전라북도 全州 子東里에서 礪山 宋斗玉氏와 密陽朴氏 부인 사이에서 次男으로 出生. 初名 東旭, 法號 鏡虛, 法名 惺牛. 먼저 出家하여 公州 麻谷寺에서 得道한 伯氏는 泰虛性圓 스님.
|1855(7)|
  • 이 무렵 어른들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짚신을 썩 잘 삼아 뒷날 너무 큰 발에 맞는 신발을 구하지 못할 예비 대책을 세움.

시흥 관악산 청계사

|1857(9)|
  • 父親喪당해 慈堂을 따라 始興 冠岳山 清溪寺에 入山, 桂虛大師 法下에서 祝髮受戒 후 沙彌의 行者修業.

경기도 광주 청계산 청계사

|1858(9)|
  • 출가, 경기도 광주 청계산 청계사, 은사 계허 桂虛

경기도 광주 청계산 청계사

|1859(10)|
  • "훗날 반드시 큰 그릇이 되어 일체중생의 스승이 되겠구나" 박선비의 예언, 청계사

계룡산 동학사

|1860|
  • 동학사 강원에서 스승 만화보선의 문하에서 수학

계룡산 동학사

|1862(14)|
  • 절에서 朴處士로부터 글을 배우며 才童으로 칭송이 자자하던 중 가을에 桂虛 스님의 천거로 鷄龍山 東鶴寺 萬化和尙을 찾아가 一大四敎를 섭렵하여 弱冠에 拔群의 실력을 공인받음.

계룡산 동학사

|1868|
  • 만화보선의 강맥을 전수
  • 동학사의 강사가 됨
|1871(23)|
  • 東鶴寺講院에서 講師의 敎理를 傳受받아 諸方學人을 指導하며 三十세 전후 젊은 講伯으로 크게 名望을 떨침.
  • 동학사에 강석을 열고 강주가 됨
  • 훗날 제자 만공월면(1871-1946)출생, 전북 태인
  • 충남 천안
  • 계룡산 동학사
|1879(31/34)|
  • 06. 환속한 스승 계허를 만나기 위해 상경하던 중 천안 근처에서 창궐하는 콜레라를 만남
  • 11.15 오도 여름철 上京 도중 天安 인근에서 모진 風雨를 만나 民家에 머물러 피하려 했으나, 악성 호열자(콜레라)가 만연되어 屍身이 널려 있는 참혹한 現場에서 生死의 절박함을 깨닫고 비로소 發心, 東鶴寺에 되돌아와 學人들을 해산하며 講院을 철폐하고, 용맹 정진하던 중 十一月 보름 한 사미승이 전하는 "소가 되어도 고삐 뚫을 구멍이 없다" 言下에 割然大悟.
  • 동학사로 돌아옴
  • 동학사 강원을 폐함
  • 충남 서산 연암산 燕巖山 천장암 天藏庵
|1880(32)|
  • 봄, 湖西 鷰巖山 天藏寺(충청남도 서산시 고북면 장요리 연암산 천장암)으로 거처를 옮겨 보림수행
  • 봄에 로 옮겨 한 자리에서 保任.
  • 충남 서산 연암산 천장암
  • 계룡산 동학사
  • 서산 부석사
  • 공주 마곡사
  • 장곡사
  • 보석사
  • 예산 용문사
  • 대정 묘각사
  • 사불상 대승사
  • 문경 봉암사
|1881(33)|
  • 천장사에서 保任 중 옷 한 벌로 一大事를 마치고 六월 주장자를 꺾어 던지며 「悟道歌」를 읊은 뒤 傳燈淵源을 밝힘.
  • 동학사, 서산 부석사, 마곡사, 장곡사, 보석사, 예산 용문사, 대정 묘각사, 사불산 대승사, 문경 봉암사 등으로 옮겨 다님
  • 연암산 天藏寺
  • 덕숭산 수덕사, 정혜사
  • 상왕산 개심사
  • 문수사
  • 도비산 부석사
  • 태화산 마곡사
  • 천비산 중암
  • 묘각사
  • 칠갑산 장곡사
  • 예산 대련사
  • 아산 봉곡사
  • 금산 보석사
  • 태고사
  • 백마강변 영은사
  • 沔川 영탑사
  • 계룡산 갑사
  • 동학사
  • 신원사
  • 속리산 법주사
|1882(34)|
  • 二十년간 연암산 天藏寺와 德祟山 修德寺·定慧寺를 비롯한 象王山 開心寺·文殊寺, 都飛山 浮石寺, 泰華山 麻谷寺, 天庇山 中庵 妙覺寺, 七甲山 長谷寺, 禮山 大蓮寺, 牙山 鳳谷寺, 錦山 寶石寺·太古寺, 白馬江邊 靈隱寺, 沔川 靈塔寺, 鷄龍山 甲寺·東鶴寺·新元寺, 俗離山 法住寺 등 湖西 일대에 禪風을 大振. 곧 염불 呪力만을 크게 일삼던 僧侶들의 고식적 修行方便을 改善하여 參禪을 고취, 開悟見性을 지도함으로써 禪을 中興. 이 무렵의 湖西 禪頌으로 德崇山 관계 七言律詩에 「避雨隱身」·「伽倻山」·「定慧寺」, 四六言詩에 「定慧寺 杜鵑吟」, 鷄龍山 관계 五言絶 「太平春」, 七言絶 「熊津」, 七言律 「漸修頓悟」, 연암산 관계 五言律 「高樓上」, 七言絶 「題天藏庵」, 泰華山 관계 七言絶 「題痲谷寺」·「泰華山」과 기타 七言絶 「湖西客」 등을 作詩.
  • 동학사
|1884(36)|
  • 제자 혜월혜명에게 수심결을 가르침
  • 만공월면이 제자가 됨
  • 十월, 東鶴寺에서 眞岩和尙을 통해 十四세의 道岩行者이던 滿空스님을 만나 "火中生蓮"일 수 있다고 일컬으며 天藏寺로 보냄.
|1886(38)|
  • 보임수행을 마치고 옷과 주장자를 불태우고 무애행에 나섬
|1890|
  • 봄, 혜월혜명 慧月慧明에게 전법게 傳法頌 내림
  • 도비산 부석사
  • 금릉金陵 청암사
  • 청암사 수도암
  • 영남의 범어사 계명암
|1898(50)|
  • 서산 부석사에 주석
  • 오성월(吳惺月1865-1943)스님의 초청으로 제자 만공, 침운과 함께 동래 범어사 계명암 방문
  • 범어사에 영남 최초의 선원 개설
  • 청암사 수도암에서 금강경 강의 중 제자 한암중원과 만남
  • 都飛山 浮石寺에서 金井山 梵魚寺의 招請을 받아 侍奉 滿空스님과 함께 金陵 靑岩寺 거쳐 범어사行, 嶺南 최초의 禪院을 범어사에 開設하고, 師佐 夏安居.
  • 청암사
  • 가야산 해인사
|1899(51)|
  • 가야산 해인사로 조실로 초빙되어 거처를 옮김
  • 가을 국비인출 대장경 인경불사의 증명
  • 수선사창설의 법주로 추대됨.
  • 10월 15일 첫 결재일을 맞이하여 ⟪수선사방함인⟫을 씀
  • 합천군가야산해인사수선사창건기를 씀 
  • ⟪결동수정혜동생도솔동불과계사문⟫ 지음
  • 청암사 조실 만우당(萬愚堂), 금강경 강론을 요청, 청암사 수도암에서 금강경 강론.
  • 청암사 대중 속에 있던 한암, 경허선사로부터 금강경 사구게를 듣고 오도, 정암사 수도암
  • 봄, 伽倻山 海印寺 祖室로 招待받고, 가을에 國王의 勅命으로 추진하는 「藏經」 刊行佛事 證明 및 海印寺 修禪社 創設의 法主에 추대. 
  • 四월 「海印寺 修禪社 芳啣錄序」에 이어 「陜川郡 伽倻山 海印寺 修禪社 創建記」, 겨울에 「喪布楔序」 씀.
  • 海印寺 조실 시절 七言絶 「海印寺 九光樓」·「伽倻山 紅流洞」·「與南泉堂翰奎」 등 作詩와 「結同修定慧同生兜率同佛果楔社女」 記文.
  • 이 해 한때 靑岩寺에서 祖室 萬愚堂, 衲子 潢巖과 접촉, 七言律詩 「上靑岩寺 修道庵」·「訪修道庵」·「靑岩寺祖室 與萬愚堂話別」을 지음.
  • 송광사
  • 지리산 화엄사 말사 천은사 수도암
  • 백장암
  • 실상사
  • 벽송사
  • 쌍계사
  • 덕유산 송계암
  • 동리산 태안사
  • 영취산 통도사, 내원암, 백운암, 
  • 표충사
  • 사불산 대성사
  • 불명산 운필암
  • 팔공산 동화사
  • 파계사
|1900(52)|
  • 음력10월 송광사 방문, 취은의 제자 자응慈應·금명金明·자성慈城이 선사에게 스승의 행장을 써줄 것을 요청
  • 12월 ⟪송광사육감정 題松廣寺六鑑亭
  • 一월 하순 曹溪山 松廣寺에 주석하여 「取隱和尙行狀」을 쓰고, 佛事點眼 證明. 이로부터 한두 해에 걸쳐 松廣寺를 비롯한 智異山 華嚴寺·泉隠寺·白丈庵·實相寺·靈源寺·碧松寺.雙溪寺、桐裏山 泰安寺、德裕山 松溪庵 등 湖南 일대에 禪院 創設.
  • 특히 화엄사 말사 천은사 山內 修道庵에서 三개월간 震應스님을 당대의 講伯으로 지도. 七言絶 「題智異山 靈源寺」.
  • 仲春, 實相寺에서 「百丈庵 回祿成造序」 쓰고, 南行하여 「德裕山 松溪庵 回祿後成造 勸善文」과 이 무렵 태안사에 머물 때 「泰安寺 萬日會 梵鍾檀那 芳啣記」 씀. 
  • 松廣寺 관계 七言絶詩에 「題松廣寺 六鑑亭」, 「映湖堂」·「和松廣寺錦溟堂」·「松廣寺 月和講伯 同行 華嚴路中 口號」 등 씀. 
  • 여름에 嶺南 지방으로 옮겨 靈鷲山 通度寺·內院寺·白雲庵·表忠寺 등 巡歷하며 禪風을 크게 떨치는 가운데 七월 통도사에서 追慕頌 「謹次 喚惺先師韻」에 이어 七言絶 「通度寺 白雲庵」 씀.
  • 그 얼마 뒤 四佛山 大聖寺, 佛明山 潤筆庵, 八公山 桐華寺·把溪寺·聖殿에도 禪房을 창설하며 海印寺 조실로 慶尙南北道 일원의 諸方衲子 지도.
  • 범어사 계명암
|1901|
  • 범어사 금강암
  • 범어사 상원효암
  • 마하사
|1902(54)|
  • 범어사 금강암에 주석
  • 마하사 나한개분불사羅漢改粉佛事에 증명법사로 초청됨
  • 梵魚寺에서 「禪門撮要」 편찬 佛事.
  • 七월 十五일, 「梵魚寺 解夏日」·「上元曉庵」 作詩. 
  • 가을, 梵魚寺 金剛庵과 摩訶寺의 羅漢殿 改粉佛事 證明.
  • 범어사
  • 가야산 해인사
|1903(55)|
  • 범어사에서 선문촬요의 원형이 되는 정법안장, 정법안장서를 편찬
  • 범어사에서 해인사로 이동, 시를 지음 
  • 해인사 조실

識淺名高世危亂           식견은 얕고 이름은 높고 세상은 위태하니不知何處可藏身           모르겠구나, 어느 곳에 몸을 숨길 수 있을지.漁村酒肆豈無處           어촌과 주막에 어찌 그런 곳 없으랴만但恐匿名名益新           이름 감출수록 더욱 이름이 날까 두렵구나.
이 무렵 「東來郡 梵魚寺 鷄鳴庵 創設 禪社記」·「梵魚寺 鷄鳴庵 創建記」·「鷄嗚庵 修禪社 芳啣淸規文」·「梵魚寺 金剛庵 七星閣 創建記」·「梵魚寺 設禪社契誼序」 등 序文·記文과 「瑞龍和尙行狀」·「題梵魚寺 普濟樓」 등 行狀·詩文에 이어 가을, 七言絶 「自梵魚寺向海印寺 道中口號」를 쓰며 海印寺에 도착, 겨울에 漢巖스님과 헤어지면서 「與法子漢巖」과 七言絶 「不忘頌」을 남김.海印寺 祖室로 學明道一·卞雪醐 스님에게 「參禪曲」을 써 주고, 「可歌可吟」·「法門曲」·「중 노릇하는 법」 등 대중 법문을 설호 스님이 정리하게 함.
  • 해인사
  • 천장암
  • 월정사
  • 안변 석왕사
|1904(56)|
  • 1월 해인사 인경불사 마무리
  • 2월 천장암 도착
  • (1905?) 봄 월정사에서 화엄경 법회
  • 오대산
  • 금강산
  • (1906?) 안변군安邊郡 석왕사, 오백나한 개분불사 증명법사
  • 여름 금강산 유람, 175편의 연작시 등 지음
  • 7월 15일, 천장암에서 만공에게 전법게를 전하고 떠난 뒤 자취를 감춤
  • 海印寺에서 印經佛事를 매듭짓고, 2월에 접어들어 湖西 天藏庵에 도착, 十一일 弟子 滿空스님에게 傳法頌으로 後來佛法을 부촉하고 자취를 감춤.
  • 봄철에 五臺山 月精寺에서 「大方廣佛華嚴經」 法會에서 法門 七言律 「上院庵與吳荷川叙舊」 作詩 후 金剛山을 巡禮하며 一七五篇의 連作雄篇 「金剛山遊山歌」 作詩 비롯,  「金剛山名句」·「題歇惺樓」 各二篇도 읊조림.
  • 釋王寺에서 五百羅溧 改粉佛事 證明. 七言絶 「題釋王寺 映月樓」, 七言律 「東海絶景」·「杜門洞 和姜鳳軒·「過寧邊 新市場」 등 作詩하며 北界 流浪, 종적이 묘연해짐.
  • 삼수
  • 갑산
  • 강계
  • 만주
  • 熙川 頭疊寺
  • 子北寺
  • 午南寺
  • 牙得浦
  • 龍浦
  • 興有村
  • 野鶴村
  • 長津江
  • 龍汀江
  • 九重山
  • 烏首山
  • 東門樓
  • 南門樓
  • 北門樓
  • 仁風樓
  • 六三亭
  • 居然亭
  • 眄柯亭
  • 小山園亭
  • 望美亭
  • 奉天臺
  • 一海精舍
  • 錦川館
  • 雲坡 별장
|1905(57)|
  • 함경남도 갑산
  • 평안북도 강계군
  • 만주
|1906(57)|
|1908|
  • 범어사, 경허의 영향으로 목판본 판각
  • 강계
  • 갑산 도화동
|1910(65)|
  • 강계를 떠나 갑산 도화동에서 서당 개설

갑산 웅이방 도하동 서재

甲山 熊耳坊 道下洞

|1912(64)|
  • 0425 갑산 웅이방 도하동 서재에서 입적
  • 4월 25일, 甲山 熊耳坊 道下洞에서 法臘 五六세, 世壽 六四세로 示寂. 그 직전에 마지막으로 一圓相을 그리며 ○ 바로 위에 써놓은 涅槃偈頌 四行이 전해 오는데
  • 마음만 홀로 둥글어
  • 그 빛 만상을 삼켰어라. 
  • 빛과 경계 다 공한데
  • 다시 이 무슨 물건이리오.
  • 心月孤圓 
  • 光呑萬像 
  • 光境俱忘
  • 復是何物  

  • 여름에 遷化 소식을 듣고 受法弟子 滿空·慧月禪師가 열반지 갑산에 가서 法軀를 모셔다 難德山에서 茶毘, 奉行. 法弟子에 宋滿空(1871~1946)·申慧月(1861~1937)·田水月(1855~1928)·慧峰·方漢巖(1876~1950)·枕雲 스님이 있고, 法下에서 白學明·金南泉·陳震應·朴太平·齋山 스님 등이 禪學修業.
|1913|
  • 수월水月 스님이 예산군 정혜선원定慧禪院으로 편지를 보내 옴.
  • “스님이 머리를 기르고 선비의 옷을 입고 갑산甲山·강계江界 등지를 오가면서 마을 서당에서 학동들을 가리키기도 하고 저잣거리에서 술잔을 들기도 하다가 임자년(1912) 봄, 갑산 웅이방熊耳坊 도하동道下洞 서재에서 입적했다.”
  • 7월 25 만공滿空, 혜월慧月 두 사형이 유골을 수습하여 난덕산蘭德山에서 다비하고 임종 때 쓴 게송을 가지고 돌아옴.
|1930|
  • 금강산 유점사 선원 滿空 조실을 중심으로 法弟子들이 「鏡虛集」 출판 불사 추진.
|1931/2|
  • 3월 15일 한암중원 漢巖重遠, 경허의 생애를 찬술함 (불기佛紀 2958년 신미년)
  • 三월 十五일, 오대산 월정사 漢嚴 스님, 「先呼鏡虛和尙行狀」 謹述.
|1936|
  • 납월 八일, 雪山 崔光益 寫, 受法弟子 滿空月面 敬賛의 鏡虛堂大禪師 惺牛眞影을 德崇山 金仙臺 眞影閣에 奉安.
  • 만공선사, 당시 한국 초상화의 대가 설산 雪山 최광익 崔光益(1891-1970)에게 자신의 진영과 스승 경허의 진영을 그리게 함. 만공선사는 경허선사 영정 좌측 상단에 스승을 기리는 영찬을 씀.
|1942|
  • 法語錄 「鏡虛集」 刊行을 위하여 선사의 後學 金靈雲(慧鏡)·尹燈岩 등이 자료 수집차 甲山·江界와 만주 일대를 다녀 오는 가운데 滿空 선사 주재, 韓龍雲 선사 편찬으로 이 해 가을 12년만에 南泉翰奎 題字, 中央禪院版本으로 「鏡虛集」(B5判 120面) 上榟.
|1980|

누락된 자료 채집과 增補完譯本 「鏡虛法語」 刊行을 위하여 五년 전부터 譯者 眞惺圓潭 스님이 각처에 답사하며 出版佛事 준비를 해 옴에 三월, 德崇山 定慧寺 能仁禪院에서 鏡虛惺牛禪師 法語集刊行會 발기, 人物研究所와 實務 추진.

|1981|

음력 十월 二0일에 즈음하여 양력 十一월 二0일자로 鏡虛惺牛禪師法語集 刊行會(證明 惠菴玄文,  會長 碧超鏡禪, 副會長 月山聖林) 編, 人物研究所刊으로 增補 完譯 初版 「鏡虛法語」(크라운判 七五0面) 발행, 修德寺에서 廻向法會.

|1990

중양절 영취사문 석명정 경허집 후기 자성





장영섭, 〈경허당 성우 대선사 행장⟩ ⟪불교신문⟫ 2012.06.14⟪鏡虛惺牛禪師年譜⟫(경허성우선사법어집간행회 간 1981년 ⟪경허법어⟫ 부록)
조사 및 입력 법진(강대공), 조하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