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陜川郡伽倻山海印寺修禪社創建記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 수선사 창건기
余嗜好遊山水者也。遊得徧。仙人尸解祖師創大伽藍。幽顯之王以大願力助成大藏經板者。陜州之伽倻海印也。而未得遊爲缺然。歲己亥秋訪到。閱其經。繞其宇。紅流洞裡。探仙人之靈蹤。放曠然忘其形骸矣。
나는 산수 유람을 좋아하는 사람이라 산천을 두루 유람하였다. 그런데 선인仙人이 시해尸解한유명幽明의 두 임금이~대장경판을 조성한 곳이 합천군 가야산 해인사인데, 아직 유람하지 못해 마음에 아쉬웠다. 기해년 가을에야 해인사에 와서 장판각을 열람하고 사우寺宇를 둘러보았으며, 홍류동 계곡에서 선인의 자취를 탐방하면서 형해形骸를 잊고 유유자적하였다.
一日有一禪和子謂余曰。今天子聖神。至仁洽而惠曁乎禪林。印經修宇。又勅建修禪社。居心學者。倣前聖資。福國祐世。化士梵雲與一山雲水。服勤勞。忘身宰。始是歲五月。過五箇月而落之。其爲樹玄功之偉且大者。有若是者也。而師其文者也。幸記之以垂示不朽也。
하루는 한 선화자禪和子가 나에게 말하였다.“지금 천자께서는 성군이시라 지극한 인덕이 넘쳐서 그 은혜가 선림禪林에까지 미쳐 장경을 인쇄하고 당우를 중수하게 하시는 한편 수선사修禪社를 세워 참선하는 사람을 거처하게 하라는 칙명을 내리셨으니, 옛날 성왕들이 나라에 복을 주고 세상을 보우하였던 일을 본받으신 것이다. 이에 화주 범운梵雲이 사내의 스님들과 함께 일신의 고생을 잊고 부지런히 일하여 이해 5월에 시작하여 다섯 달 만에 낙성하였으니, 그 공로를 세운 것이 이토록 위대합니다. 스님은 문장을 짓는 분이니 기문을 지어 이 사실을 후세에 길이 전할 수 있게 해 주십시오.”
余曰。毋爲是也。禪和子曰。昔釋迦氏以正法眼藏付囑摩訶迦葉。傳至達磨。來震旦。又傳至石屋。而我東國太古。傳得石屋。又傳至淸虛。淸虛於釋迦氏。爲六十三代孫也。當是時也。非特山林衲子。見其性而作導師也。上自天子。下至王公巨人。施及于草野賢達。莫不徹證無生。坐脫立亡。故叅尋決擇。如飢就食渇赴飮然。勢莫得以遏之也。而降于今。視正法如土塊。持續慧命者爲兒戱。甚者相目憎嫉之。而至於靡所不至也。嗚呼。後之人。雖欲聞正法眼藏之說。孰從而聽之乎。於斯時也。創修禪社者。寔爲火中蓮華也。此尤不可不以記之而垂示不朽者也。
내가 “이런 일은 하지 말라.” 하니, 그 선화자가 말하였다. “옛날 석가모니가 정법안장을 가섭에게 부촉, 대대로 전수하여 달마에 이르러 중국으로 왔고, 또 석옥石屋에까지 이르렀는데, 우리 동국의 태고太古가 석옥의 법을 전해 받았고, 또 대대로 전수하여 청허淸虛에 이르렀으니, 청허는 석가모니의 63세 법손이 됩니다. 그 시절에는 산림의 납자들만 견성하여 도사導師가 된 게 아니라 위로 천자로부터 아래로 왕공王公·대인 및 초야의 현인·달사達士들까지도 무생無生의 이치를 사무치게 증득하여 좌탈입망하지 않은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스승을 찾아 공부를 결택決擇하기를, 마치 주린 사람이 밥을 찾고 목마른 사람이 물을 찾는 것처럼 하여 그 형세를 막을 수 없었습니다. 그러나 후대로 내려와 지금에 이르러서는정법을 보기를 흙덩이처럼 여기고 혜명慧命을 이어가는 것을 보기를 아이 장난처럼 여기며, 심한 경우에는 서로 반목하고 질시하는 등 못하는 짓이 없습니다. 슬프다! 후세 사람들이 정법안장의 법을 듣고자 하나 누구에게 듣겠습니까? 이런 때에 수선사를 창건한 것은 참으로 화중생련火中生蓮이니, 이 사실을 기록하여 후세에 길이 전하지 않아서는 더욱 안 됩니다.”
余正色曰。鄙夫。子之見解也。子知其有記之爲有記也。而不知其無記之爲有記之爲愈者也。安知夫未有一人修禪。而十類群生已是一時見性了也。未擧一則公案。而山河大地。明暗色空。以至麻線竹針。已是一時皆放大光明了也。又安知夫未開基也。已是一時成禪社了也。未具椳闑材也。已是一時記其事詳悉了也。夫如是。則豈可以爲紙墨之而贅疣脂粉於參正法眼藏之禪社也哉。
내가 정색하고 말하였다.“비루하구나! 그대의 견해여. 그대는 기록이 있는 것이 기록이 있는 것인 줄만 알고, 기록이 없는 것이 기록이 있는 것보다 낫다는 것은 모르니, 한 사람도 수선修禪하기 전에 십류十類의 중생들이 이미 일시에 견성했다는 것을 어찌 알겠으며, 하나의 공안을 들기도 전에 산하대지와 명암明暗·공색空色으로부터 삼실·대바늘 같은 사소한 것에 이르기까지 일체가 이미 일시에 큰 광명을 놓는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또 이 수선사의 터를 닦기도 전에 이미 일시에 수선사를 완공했으며, 문설주를 만들 목재를 마련하기도 전에 이미 일시에 그 사실을 상세히 기록했다는 것을 어찌 알겠는가. 어찌 종이와 먹으로 굳이 글을 써서 정법안장을 참구하는 수선사에 군더더기 혹을 붙이고 지분脂粉을 바를 필요가 있겠는가?”
禪和子悚然避席曰。
聽師之言。未敢自許聞道百也。然敢問正法眼藏是箇甚麽。
曰。秪這是。
又問曰。云是者。是箇甚麽。
曰。伽倻山色揷天碧。
良久云。
直下言前薦得。未免觸途狂見。縱饒句下精通。也是箭過西天。恁麽也頭上安頭。不恁麽也斬頭覔活。且道。到這裡。禪却如何叅。喝一喝。是日爲閑話移晷。妨却忘形骸之趣味。
그 선화자가 흠칫 놀라 자리를 비켜 앉으며 말하였다.
“스님의 말을 들으니, 도를 조금 알았다도를 조금 알았다(聞道百)고 감히 자처하지 못하겠습니다만 감히 묻겠습니다. 정법안장은 무엇입니까?”
“단지 이것이다.”
“이것이란 무엇입니까?”
“가야산 빛이 푸른 하늘에 꽂혔구나.”
양구良久하고 말하였다.
“곧바로 알아차렸다 하더라도 곳곳마다 미친 견해일 뿐이며, 비록 말을 듣자마자 분명히 알았다 하더라도 역시 화살은 이미 서천西天을 지나갔다. 이렇다 하면 머리 위에 머리를 얹는 격이요, 이렇지 않다 하면 머리를 끊고 살고자 하는 격이니 일러 보라. 여기에 이르러 선禪은 도리어 어떻게 참구하겠는가? 억! 오늘 부질없는 말을 하느라 시간을 많이 보냈으니, 형해를 잊는 의취意趣에 방해되는구나.”
禪和子請次第書着打葛藤一絡索。以爲修禪社記。記之
선화자가 이 자리에서 한 얘기를 서술하여 수선사 기문으로 삼기를 청하기에 기록하노라.

[G-01-00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