텍스트자료 Texts

鏡虛集序

경허집 서 (한용운)

余於七年前。在佛敎社。畏友滿空以一稿示余曰。此吾師鏡虛和尙之遺著也。將欲付梓。而此稿本蒐集散在於各處者。則未免誤落之失。幸須校閱。且屬序文焉.

내가 7년 전 불교사佛敎社에 있을 때 외우畏友 만공滿空이 초고 하나를 가지고 와서 내게 보여 주며 말하기를, “이것은 나의 스승 경허鏡虛 스님의 유고인데 장차 간행하려 하오. 그런데 이 유고는 본래 각처에 흩어져 있던 것을 수집했고 보면 오탈이 없을 수 없을 터이니, 교열해 주기 바라오.” 하고 서문을 부탁하였다.

余不敢辭。再三讀之。其所著非徒工於詩文。而大率禪文法語玄談妙句。或高唫於酒肆屠市之間而不入世間。或縱筆於空山雨雪之中而不出世間。縱橫淋漓。生熟自在。無文不禪。何句非法。莫論其軌則之如何。實一大奇文奇詩也。而後輩之欲公於世者。其志實不在乎傳其文字。而亦在乎傳其法語也.

나는 감히 사양할 수 없어 그 초고를 재삼 읽어 보았더니, 그 저술이 시문에 공교할 뿐 아니라 대체로 선문이요 법어이며, 현담이요 묘구였다. 술집이나 저잣거리에서 높이 시를 읊되 세간에 빠져들지 않으며, 한적한 산속 눈비 내리는 중에 붓을 휘둘러도 세간을 벗어나지 않아 종횡으로 펼쳐진 글에 생경하고 익숙함이 자유롭다. 무슨 글인들 선禪 아님이 없으니, 어느 글귀인들 법이 아니리오! 문장을 짓는 궤칙에 맞는지 여부는 막론하고 실로 일대 기이한 시문이다. 그러나 후진들이 이 시문을 세상에 공간公刊하고자 하는 것은, 그 뜻이 실로 그 문장을 전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그 법어를 전하는 데 있다.

余亦切望此書之速行于世。其後其門徒與有志者以爲鏡虛之所述。不止於此。而尙遺於其晩年潜跡之地者不尠。期欲盡其完璧。故其付梓之議。一時寢之。自今春以來。後學金靈雲。尹燈岩等發奮力圖。專徃于甲山。江界及滿洲等地。窮査極搜。庶幾無漏。余更加修正。而其年代次序。莫之可

考。故隨蒐編纂耳.

나도 이 책이 속히 세상에 간행되기를 간절히 바랐다. 그런데 그 후 그 문도와 뜻이 있는 이들이 “경허가 지은 글이 이 정도에 그치지 않고, 아직도 만년에 자취를 감추고 살던 지역에 남아 있는 것이 적지 않을 것이다.” 하여 기어코 완벽하게 유문을 수습하고자 하였다. 그래서 이 책을 간행하자던 논의가 일시 중지되었다. 올봄부터 후학 김영운金靈雲, 윤등암尹燈岩 등이 이 일을 위해 발분하고 나서서 갑산甲山, 강계江界 및 만주 등지로 직접 가서 샅샅이 조사하여 거의 빠짐없이 수습하였다. 내가 다시 원고를 수정하였으나 연대의 선후는 알 길이 없었기 때문에 수집한 대로 편찬하였다.


余固知和尙元非文字之專攻家。則其詩與文。在於章句之規範與精工。或有一舍之逕庭者。而未足以爲全城之一瑕。朗空之片雲。然其禪旨妙韻。錚然有聲於尋常筆墨之間而大有功於後學者。又安可疑也.

스님이 원래 문장을 전공한 분이 아님을 나는 잘 안다. 따라서 스님의 시문은 문장을 짓는 법도와 정련精練된 수사에는 크게 맞지 않은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전역全域의 한 흠이나 맑은 허공의 조각구름이 될 정도는 못 된다. 그러나 그중에서 선지禪旨가 담긴 오묘한 시편들은 심상한 작품들 중에서 특히 뛰어나 후학들의 공부에 큰 도움이 될 것이 어찌 의심할 나위 있겠는가.

鏡虛和尙在世時。常擬一見。痛飮一大白。罵倒三世諸佛爲快。奈事與心違。卒卒未能。於焉和尙入寂數十年之後。接其手澤。浮世之慷慨。固若是也。

경허 스님이 세상에 계실 때 늘 한번 만나서 한번 술을 맘껏 마시고 삼세제불을 통쾌히 매도罵倒하고 싶었건만, 일이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아 끝내 뜻을 이루지 못했음을 어이하리오! 어느덧 스님이 입적하신 지 수십 년 뒤에 그 유고를 받아 보니, 덧없는 세상에 대한 강개한 심정이 진실로 이와 같도다.

世尊降誕後二千九百六十九年壬午九月二日。韓龍雲識。

세존 탄강誕降 후 2969년 임오년 9월 2일에 한용운韓龍雲은 삼가 쓰노라.


⟪경허집 鏡虛集⟫(ABC, H0283 v11, p.587c01-c11)웹페이지 편집 : 법진 (2024 01.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