梵魚寺鷄鳴庵創建記
謹按本寺記蹟云。知時鷄鳴房五間。置
之東嶺。又俗傳云。鷄鳴于此。而見庵東
峙有鷄化石與鷄足痕。庵號鷄鳴。志
此也。前十年癸巳三月。雨華丈老與
其嗣混海講伯。同金峯老師。發大願力。
於古鷄鳴庵基。起五間精舍。閱八個月
而落之。畵之檀幀奉安。越四年丙申。
又起七星閣三間與別寮四間。畵七星
獨聖山靈等幀奉安。而因菴務倥偬。
過八年于今。未有以文記其事。余南遊
住金剛庵。主本庵惺月禪伯。請余其事
『경허집』 鏡虛集(ABC, H0283 v11, p.609b13-b24)
범어사 계명암 창건에 대한 기문(梵魚寺鷄鳴庵創建記)
삼가 살펴보건대 본사의 『사적기』에 “지시계명방知時鷄鳴房 다섯 칸을 동쪽 기슭에 설치했다.” 하였고, 또 세상 사람들이 전하는 얘기에 “닭이 이곳에서 울었고, 암자 동쪽에 닭의 화석과 닭의 발자국이 있다.” 하니, 암자 이름을 계명이라 한 것은 이러한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10년 전 계사년(1893) 3월에 우화 장로雨華長老와 그 제자 혼해 강백混海講伯이 금봉 노사金峯老師와 함께 큰 원력을 일으켜 계명암의 옛터에 다섯 칸 정사를 세워 여덟 달 만에 낙성하고 탱화를 그려서 봉안하였다. 그리고 4년 뒤인 병신년(1896)에 또 칠성각 세 칸과 요사채 네 칸을 짓고, 칠성·독성·산신 등의 탱화를 그려서 봉안하였으나 암자의 일이 바빠 지금까지 8년이 지나도록 아직 그 사적을 기록한 글이 없다.
내가 남방을 다니다가 금강암에 머물고 있었는데, 주지인 성월 선백惺月禪伯이 나에게 그 사적을 기록해 주길 청하기에 내가 좋다고 하고 다음과 같이 쓴다.
업데이트 : 2024.10.06 AB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