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은 1937년 1월에 만공 선사가 덕숭산 금선동 소림초당에서 효봉학눌曉峰學訥(1888~1966) 스님에게 써준 것이다.
효봉 스님은 평안남도 양덕에서 태어났고, 평양 고등보통학교와 일본 와세다 대학 법학부를 졸업한 뒤 서울 지방법원, 함흥 지방법원 등에서 법관을 지냈다. 그러나 일제 치하에 법관으로 일하는 것에 회의를 느끼고, 1925년 금강산 신계사에서 석두石頭 스님을 은사로 출가하였다. 만공, 용성, 수월 스님 등 당대의 선지식을 찾아다니며 수행하였고, 이때 만공 선사는 효봉 스님에게 ‘선옹船翁’이라는 법호를 주었다. 이후 1937년부터 10년간 송광사 삼일암 조실을 지냈고, 1946년 개설한 해인사 가야총림의 초대방장을 지냈다. 평생을 수행정진에 힘써온 효봉 스님은 1966년 세수 79세, 법랍 41세에 입적하였다.
이 글은 피봉皮封과 내지內紙로 구성되어 있고, 송광사성보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통도사성보박물관에는 영인본이 있다.
만공월면 친필, 1937년, 지본묵서, 피봉28.0×7.8, 내지27.1×49.0cm, 송광사성보박물관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