大師姓金, 諱孟允, 龍隱其號, 連山人也. 父諱兢源, 母權氏, 十二歲 去佛明山花嚴寺, 拜奇峰 長老. 長老曰: “異哉! 紅衣童乎. 昨夜夢見赤龍抱入胸襟, 兆汝來也.” 因爲收留. 至十五歲, 祝髮 受戒, 性行善順, 豁如有老成風度焉. 大師以保護伽藍爲平生事業, 而爲己甚儉, 利他則優, 有識 者偉之. 中年忽發無常
대사의 성은 김金이요, 휘는 맹윤孟允이고 용은龍隱은 호이며, 본관은 연산連山72이다. 부친의 휘는 긍원兢源이요, 모친은 권씨權氏이다. 12세에 불명산佛明山 화암사花巖寺에 가서 기봉奇峰장로를 배알하니 장로가 말하기를, “기이하도다! 붉은 옷을 입은 동자여. 간밤에 붉은 용이 내 품속에 들어오는 꿈을 꾸었더니, 네가 올 조짐이었구나.” 하고 그를 받아들였다. 15세가 되었을 때 삭발 수계하였는데, 성품과 행실이 착하고 온순하였으며 활달豁達하여 노성老成한 사람의 풍모가 있었다.
대사는 가람을 보호하는 것으로 평생의 임무를 삼았으며, 자기를 위하는 데는 매우 검소하였고, 남을 이롭게 하는 데는 넉넉하였으니, 식견 있는 이들이 훌륭하다고 여겼다. 중년에 문득 무상을 느끼고 발심發心하여
心, 遊歷名山, 遍參妙道, 而數千日祝聖, 是豈代見之哉? 則大師祝君奉佛, 治心利物, 非他常例人所及也. 年四十, 入于恩養師奇峰長老之室, 金波和尙卽其翁師也. 大師於 太古和尙爲十八世之孫也. 己亥十月初七日得微疾, 至臘月十九日巳時, 命侍僧應善曰: “爲我去 法宇, 三拜于佛.” 其僧如敎. 大師又謂諸眷屬曰: “余見有異人, 其貌甚嚴偉, 而謂余
명산을 두루 다니면 서 오묘한 도를 참구하고 수천 일 동안 불보살에 기도하였으니, 이 어찌 어느 시대나 볼 수 있는 일이겠는가. 그러한즉 대사가 임금의 장수를 빌고 부처님을 받들며 자기 마음을 다스리고 타인을 이롭게 한 것은 일반 사람들이 미칠 수 있는 바가 아니다.
나이 40세에 은사 기봉 장로의 입실 제자가 되었으니, 금파金波 화상이 바로 그의 옹사翁師이다. 따라서 대사는 태고太古 화상에게 18세손이 된다.
기해년(1899) 10월 7일에 미질微疾이 있었다. 섣달 19일 사시巳時에 시자승 응선應善에게 분부하기를, “나를 위해 법당에 가서 부처님께 삼배를 올려라.”고 하기에 시자승이 분부대로 하였다. 대사는 또 권속들에게 말하기를, “내가 이인異人을 만났는데, 그 용모가 매우 위엄 있고 훤출하였다. 그가 나에게 말하기를,
曰: ‘我是文 殊童子, 不離于此道場, 當接引汝于西方蓮臺.’ 余對以無德行, 其人曰: ‘不久當見.’ 言訖而隱. 異哉!” 諸眷屬聽之亦異之. 至二十一日亥時, 大師目顧衆會曰: “吾今逝矣.” 扶起向西而坐, 又令 大衆念佛. 時法子暻圓 附耳問曰: “法傅聞念誦阿彌陀佛聲乎?” 大師點頭, 泊然而逝. 盖大師生 於道光七年丁亥, 入滅於光武三年己亥, 壽七十三. 十五歲受戒, 臘五十八也. 法門碩德云
‘나는 문수동자로 이 도량을 떠나지 않고 있으니, 그대를 서방의 연화대蓮花臺로 인도할 것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덕행이 없다고 대답했더니,그 사람이 ‘오래지 않아 만나게 될 것이다.’ 하고 말을 마치자 사라졌으니, 기이한 일이로다.”라고 하였다. 권속들도 그 말을 듣고 참으로 기이하게 여겼다.
21일 해시亥時에 이르러 대사가 대중을 돌아보며 말하기를,“나는 이제 가겠다.” 하고 부축받아 몸을 일으켜 서쪽을 향해 앉고는 대중에게 염불하도록 하였다. 이때 법제자 경원暻圓이 대사의귀에 대고 묻기를, “스님! 아미타불 염송 소리가 들리십니까?”라고 하자 대사가 머리를 끄덕이고 편안히 입적하셨다.
대사는 도광道光 7년 정해년(1827)에 태어났고, 광무光武 3년 기해년(1899)에 입적하였으니 세수는 73세요, 15세 때 수계受戒하였으니 법랍은 58세이다. 법문法門에 대덕이
亡, 緇 白皆感傷不已. 閱禪話, 古德云: “雲中縱有金毛現, 正眼觀時非吉祥.” 則何貴乎文殊菩薩之接 引? 而祖師云: “凡人臨命終時, 天魔波旬拚作佛菩薩僧, 迷亂行人.” 圭峰禪師云: “修行人非有 智慧心功者, 到此難辨眞僞.” 其自稱文殊童子者, 果眞乎假乎? 雖然, 脩多羅云: “衆生有善根者, 佛菩薩或顯加, 或夢喩, 或當命終接引往生佛界.” 夫如是則凡我漂墮六趣者, 蒙其聖加, 徑脫輪 廻者, 何善如之? 又云: “欲
세상을 떠났으니, 승속을 막론하고 모두 슬퍼하여 마지않았다.
선화禪話를 보면 고덕古德이 말하기를, “구름 속에 비록 부처님이 출현할지라도 정안正眼으로 볼 때에는 길상이 아니로다.”라고 하였으니, 문수보살의 인도를 귀하게 여길 게 있으리오. 그리고 조사祖師가 이르기를, “무릇 임종할 때에는 천마天魔 파순波旬이 불보살이나 승려로 변신하여 수행자를 미혹하게 한다.”라고 하였고, 규봉圭峰 선사는 이르기를, “수행인이 지혜의 마음 공부가 있지않으면 여기에 이르러 진위를 분간할 수 없다.”라고 하였으니, 자칭 문수동자라 했던 분이 과연 진짜인가? 가짜인가?
비록 그러하나 수다라脩多羅에 이르기를, “중생 중에 선근善根이 있는 자에게는 불보살님이 혹 나타나서 가피를 보이고, 혹 꿈에 일러 주고, 혹 임종 때에 인도하여 불계佛界로 왕생하게 한다.”라고 하였다. 이렇다면 무릇 우리 육취六趣에 떨어져 있는 이들이 불보살의 가피를 입어서 속히 윤회를 벗어난다면, 이보다 더 좋은 일이 어디 있겠는가. 또 이르기를,
知前生事, 今生受者是; 欲知後生事, 今生作者是.” 推其大師之平生 事業, 臨終作用接引聖人, 其爲文殊菩薩也, 無惑矣. 古德云: “邪人說正法, 正法悉歸邪; 正人說 邪法, 邪法悉歸正.” 其所謂邪正云者, 無自來剖判面目也, 固如是, 而菩薩處胎經云: “江河殊名, 歸大海, 失其本名; 衆鳥異色, 依須彌, 皆同一色.” 佛祖之利生法門, 廣大不可思議, 而衆生品機 分分萬差, 不可以一偏小見辨之, 見笑於大方家也. 光武五年肇夏, 楓溪禪伯訪余于佛靈山靑岩室 中, 請以先師行狀. 余追感乎與其先師有舊, 而重其嗣足爲先之誠意, 不以不閑文辭辭之. 謹撰右.
湖西歸釋鏡虛惺牛和南.
“전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받는 것이 이것이요, 내생의 일을 알고자 하면 금생에 짓는 것이 이것이다.”라고 하였으니, 대사가 평생에 한 일로 미루어 보건대 임종 때 나타나 인도해 준 성인聖人은 문수보살이 틀림없다. 고덕이 이르기를, “삿된 사람이 정법을 설하면 정법이 다 삿된 것이 되며, 바른 사람이 삿된 법을 설하면 삿된 법이 다 바른 것이 된다.”라고 하였으니, 소위 삿됨과 바름이란 것은 그 자체로 판별되는 면목이 없는 것이 진실로 이와 같다. 그러나 ⟪보살처태경菩薩處胎經⟫에 이르기를, “강과 하천이 이름은 다르나 대해大海로 들어가면 그 본래 이름을 잃고, 뭇 새가 색은 다르나 수미산에 의지하면모두 다 한 색이다.”라고 하였으니, 불조佛祖가 중생을 이롭게 하는법문은 광대하여 이루 헤아릴 수가 없고 중생의 품류品類와 근기는 천차만별이다. 따라서 하나의 치우친 소견으로 판별하여 대방가大方家에게 비웃음을 사서는 안 될 일이다.
광무光武 5년(1901) 초여름에 풍계 선백楓溪禪伯이 불령산佛靈山 청암실靑岩室로 나를 찾아와서 선사先師의 행장行狀을 부탁하였다. 나는 그의 선사와의 옛정을 추억하고, 또 선사를 위한 제자의 정성스런 뜻을 중히 여겨 문사文辭에 능하지 못하다는 이유로 사양하지 못하고 삼가 이상과 같이 쓴다.
호서湖西 승려 경허성우 화남和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