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천성이 인간 세상에 섞여 살기를 좋아하며, 진흙을 파고 꼬리를 그 가운데 끌고 다니기를 좋아하는 사람이다. 다만 스스로 절룩거리며 44년의 세월을 보냈는데 우연히 해인정사에서 원개사(遠開士 : 한암스님)를 만나게 되었다.
그는 성품과 행동, 바탕이 곧고 학문이 고명하였다. 그래서 그와 함께 동안거를 서로 세상을 얻은 듯 지냈는데, 오늘 행장(걸망)을 꾸려 서로 이별을 하게 되니, 아침 저녁으로 일어나는 연운(煙雲)과 멀리 있고 가까이 있는 것들이 이별하는 회포를 뒤흔들지 않는 것이 없구나. 하물며 덧없는 인생은 늙기 쉽고, 좋은 인연은 다시 만나기 어려우니, 이별의 쓸쓸한 마음이야 더 어떻다고 말할 수 있으랴. 옛 사람이 말하기를, “천하에 아는 사람은 무척 많건마는 그러나 진실로 나의 지기(知己)가 몇이나 되랴.” 하지 않았던가. 아, 원개사(遠開士)가 아니면 내가 누구와 더불어 지음(知音)이 되랴! 그래서 시 한 수 지어서 뒷날에 서로 잊지 말자는 부탁을 하노라.
북해에 높이 뜬 붕새 같은 포부로,부질없이 얼마나 나뭇가지를 넘나들었던가?이별이란 예사라서 어려운 게 아니지만덧 없는 인생 헤어지면 또 언제 만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