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6(불기2973) 10월 21일 새벽, 동녘 하늘에 찬연히 빛나던 밝은 별이 드디어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이날 불교 조선의 법주이신 만공 선사께서 76년의 위대한 생애를 일기로 고요히 열반에 드셨다. 생사를 여의고 열반이 없는 것처럼, 선사의 자재한 거래가 어찌 우연한 일이겠는가. 친히 선사를 모시고 직접 선산의 법훈을 입은 산에 있는 납자들은 물론이고, 멀리 선사의 도력을 우러러 공경하던 일반 사회 대중들까지도 이 슬픈 소식이 전해지자, 한순간 맑은 하늘에 태양을 잃은 듯 눈앞
이 캄캄함을 금할 수 없었다.
만공스님은 인자한 스님, 존엄한 스님, 거룩한 스님이시다. 존명만 들어도 그 위대한 법력에 위압을 느끼던 세기의 성자이신 만공스님은 드디어 이 사바세계를 떠나셨다.
그러나 열반하여 스님의 육신은 없지만 널리 모든 중생들을 구제하신 그 숭고한 정신만은 우리들 마음속에 길이길이 남아 있음은 부정할 수가 없다. 그렇다. 스님은 확실히 살아계신다. 그 혹독한 일제강점기 시대에 조선불교를 살리기 위해서 끊임없이 악전고투한 스님의 지난 역사를 회상할 때마다 우리는 지금 친히 스님
을 받들어 모시고 있다는 느낌이 생존해 계실 때보다 오히려 더욱더 뼈아프게 느껴진다. 스님은 가시는 곳마다 대가람을 지으시고, 혹은 모든 절마다 선원을 개설하시고, 또 옛 성인의 유적을 복원하셨고, 혹은 스승의 문집을 출판하시고, 때로는 청정한 납자와 본산의 주지로, 때로는 법사와 조실로 어떤 지위에 계시던 모든 시절을 막론하고 일말의 사심과 욕심이 없이 시종일관하셨다.
불자들을 위해서 법을 설하고, 중생들을 위해서 도를 펴신 스님의 활발한 면목이야말로 불교의 일대성장이며, 도의 세계에서는 하나의 위대한 광경이었음은 세상 사람들이 모두 인정하는 사실이다. 일본의 내선일체라는 이름아래 조선불교까지 병탄하려는 야욕을 세우고 형식적인 승인을 얻고자 31본산 주지
회의를 소집하였을 때, 부득이한 사유로 마곡사 주지의 명의였을 뿐 일체의 공석에 나서지 않던 스님께서 선정을 깨뜨리고 분연히 일어나 의회에 참석하셨다. 스님께 발언이 허용되자 "개구일갈 청정본연커늘 운하홀생산하대지오(꾸짖으시기를, 본래 스스로 청정한데, 어찌 홀연히 산하대지가 생겼다고 말하느냐?)"라고 장내가 떠나갈 듯 사자후를 하시고 나서 "사찰 보호라는 명목하에 조선사찰령을 제정해서 이땅의 7000 승려들을 파계하도록 한 역대 총독들은 지금 아비지옥에서 하루에 만 번을 죽는 고통을 받고 있다."고 책상을 치며 말하였다.
당시 총독 남차랑에게 나가가서 핍박하던 높은 기상의 걸림 없는 스님인 동시에 조선 독립을 위하여 간월의 외로운 섬에서 천일기도를 하시고, 날로 심해가는 일제의 최후발악으로 인해 당신의 참 뜻을 다 말하지도 못하였다. 청풍에
한숨을 보태고, 파도에 눈물을 흘리시던 자비 가득한 스님을 생각하니, 완전한 조선의 해방은 아직도 막연하고, 몸과 뼈만이라도 스님의 원력이 실천되었지만, 그 결과를 보지 못하고 돌아가셨으니, 아! 이 어찌 크게 분하고 원통한 일이 아니겠는가. 스님께서 미리 떠나실 준비를 하시던 것을 알지 못하고, 이제 일을 당하고 나서야 비로소 그 뜻을 깨닫게 되니, 이 뼈아픈 애처로움을 그 어디에다 호소하랴!
스님이 돌아가신 후에 산중의 혼란을 막기 위하여 전국 유일의 총림제를 실시하게 하신 것이라든지, 당신의 소지품을 모조리 정리하신 일,
더구나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얼굴 털을 깎지 않던 스님께서 떠나시던 날 손수 면도를 하시고 거울에 비친 당신 얼굴을 향해서 "자네하고도 오늘이 마지막일세." 하고 쓸쓸히 웃으시던 일, "전월사는 협소해서 산중 대중들이 곤란할 것이니, 언제든 큰절에 내려가서 죽겠다"고 하시던 말씀과 같이 일부러 정혜사로 내려오셔서 물 한 모금도 안드시고 선전에 든 채 고요히 떠나신 그 태연자약한 열반을 생각할 때마다 아아, 가슴이 터질 듯 눈물이 앞을 가리는구나.
"별증이 있어야지"라며 시시때때로 하시던 말씀! 명목뿐인
조선의 해방이 지나간 왜정시대의 별증이었다면 미·소 대치하의 이 강토에 또다시 별증이 없으리라고 그 누가 단언하겠습니까.
스님이시여! 확실히 믿습니다. 단지 현실 세계뿐만 아니라, 우리들의 마음속에까지 별증이 있으리라는 것을-. 그 때 비로소 생사의 거래를 끊고 가신 스님의 본래 면목을 친견할 것을 믿고, 이에 굳게 맹서 하옵나이다.
스님이시여, 길이길이 안념하소서.
만약 스님의 뜻을 알고자 한다면
덕숭산 꼭대기에서 달을 바라보라.
가득 차고, 이지러지는 밝고 어두움 속에
만공의 빼어난 기운이 스스로 오가는구나.
1946(불기2973) 12월 일. 미좌 사미 중은 분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