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滿空) 滿空의 姓은 宋氏, 諱는 月面, 號는 滿空이니 高宗 12年(1875) 3月 7日에 全羅北道 井邑郡 泰仁面에서 出生하였으며, 15살 때 瑞山 天藏寺에 가서 泰虛禪師에게서 중이 되었고 活句禪을 参究하다가 1895年 7月 25日 새벽 쇳송하는데, 鍾頌의 “應觀法界性一切唯心造”란 구절을 듣는 순간 활연대오하고 다음의 悟道頌을 읊었다.
空山理氣古今外 白雲清風自去來
何事達磨越西天 鷄鳴丑時寅日出
鏡虛의 법을 이어받고 그의 弟子가 되었다. 德崇山 定慧寺, 金剛山 楡岾寺에서 禪風을 떨쳤다. 스님의 政治的 手腕과 凛凛한 威風은 泗溟을 聯想할 수 있다. 1594年 4月에 泗溟이 蔚山 西生浦에서 가또오기요마사(加藤清正)를 만남에, 加藤이 泗溟에게 貴國에는 무엇이 가장 貴重한 寶貝냐? 하고 물음에 泗溟이 대답하되 우리나라에는 보배가 없고 다만 보배가 日本에 있으니 다시 말하면, 우리 國民들은 모두 加藤의 목을 베려고 원하기 때문에 그대의 목이 바로 우리들의 보배라고 하여 加藤의 肝膽을 서늘하게 한 것과 같이 滿空도 1911年 3月 11日 朝鮮 總督府 第一會議室에서 植民地 政策의 한 方法으로 朝鮮寺刹令을 公布하고 서울에 博文寺를 지어 31本山의 總本山을 만들어 31本山 住持總會를 열고 署名捺印하려 日本歷代總督의 恩功을 물으니 다른 帶妻住持들은 朝鮮佛敎의 繁昌과 大法興隆의 敎化를 一口難說로 칭찬하였으나 當時 麻谷寺住持 滿空禪師는 南總督(南次郎)을 叱打하고 돌아보면서 부처님의 經典에 한 比丘나 比丘尼를 破戒시키면 無間地獄에 떨어져 一日一夜에 萬生萬死의 苦를 받는다 하였거든 하물며 歷代總督이 無數한 比丘를 破戒시켜 놓았으니 어찌 罪가 없으랴! 우리에게는 無間阿鼻地獄에 떨어진 歷代總督의 一日一夜에 萬生萬死의 苦를 免해 주려는 慈悲밖에 남지 않았다고 大喝하여 博文寺의 總本山制度도 水泡로 돌아가고 말았다. 그리하여 水原 龍珠寺住持 帶妻 姜大蓮은 宋滿空을 妖僧이니 狂僧이니 하고 無數한 辱을 퍼부었었다. (中略) 1946年 4月 20日에 世壽 76, 법랍 64살을 一期로 定慧寺에서 入寂하였다.
⟪한국불교소의경전연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