芳啣
光武四年庚子四月日
梵魚寺揔攝芳啣錄序
余踈慵, 無用於世而且病, 久廢人湖
西而窩蟄矣. 有遊方者言 其遊,
必曰:“金剛頭流伽倻五臺之勝, 甲於
遊翫.”余笑曰:“所遊 者, 豈在山水之如
何耶?” 言者昧然. 余厭患乎塵緣日
범어사 총섭방함록의 서문
나는 무능하고 게을러 세상에 쓸모없는 사람이라 병들어 호서 지방에서 오래 묻혀 지내고 있었는데, 제방을 다녀 본 사람들이 자기가 다녀본 곳을 말하면 반드시“승묘勝妙한 땅인 금강산, 두류산, 가야산, 오대산이 유람하기에 으뜸이다.”라고 하였다. 내가 웃으며 말하기를, “제방을 다니는 목적이 어찌 산수가 어떠하냐에 있으리오?”라고 하였더니, 말한 사람이 그 뜻을 몰랐다.
내가 속진의 일은 날로 많아지고
增, 而道業莫就, 於光武三年暮
春, 孤筇短褐, 揮擲萬累, 做得乎
賤賣風 流,欲其適於自適,過寒
熱之際於佛明伽倻之山.其翌年
夏,逶 迤到于梵魚寺, 有晦玄長
老住淸風堂, 操履淸高, 文章
도업道業은 이루지 못한 것을 걱정하여 광무光武 3년(1899) 늦봄에 간편한 복장으로 지팡이 하나를 짚고서 모든 세루世累를 벗어던지고 홀가분하게 풍류를 즐기며 스스로 유유자적하고자 하여 불명산佛明山과 가야산에서 여름과 겨울을 났다. 그리고 그 이듬해 여름에 발길이 범어사에 이르니, 회현晦玄 장로가 청풍당淸風堂에 주석하고 있었는데, 문장을 잘 하고 박식하며 단정한 분이었다.
博雅. 優 遊數月,論心事甚相
得.一日謂余曰:“寺有重任,曰總攝.
此是
御勅而
翼宗大王
神貞王后兩位仙龕, 奉安于
며칠 동안 한가로이 지내면서 심사心事를 얘기해 보았더니 매우 뜻이 맞았다. 하루는 회현 장로가 나에게 말하였다.
“이 절에 중임이 있으니, 총섭입니다. 이는 임금이 칙명으로 익종대왕翼宗大王과 신정왕후神貞王后 두 분의 신위를 이 절에 봉안하고,
本寺, 以其誕辰, 使總攝奉
享祭事, 遵行萬代. 若非金井
之靈淑·梵魚之名藍, 豈有如是
特爲 勅定也. 所以 下資憲
大夫扶宗樹敎十六宗主僧風糾
正大覺登階都總攝資啣, 限二
그 탄신일에 총섭으로 하여금 제사를 모시게 하여 만대토 록 준행하게 하였으니, 신령한 기운이 모인 금정산과 이름난 가람인 범어사가 아니라면 어찌 이와 같이 특별히 칙명으로 제정하는 일이 있겠습니까? 그런 까닭에 ‘자헌대부資憲大夫 부종수교扶宗樹 敎 십육종주十六宗主 승풍규정僧風糾正 대각등계大覺登階 도총섭都 總攝’이란 자급과 직함을 하사하고 임기를 2년으로 제한하여 직임 을 교대하게 하니,
年, 任遞以禀下.其爲總攝之 職
之鄭重, 寔非凡刹例號, 可知也. 況
舊號僧統名位, 卑寺事不得
自擅, 禀衆長老指揮, 任亦不
甚擇人. 今職總攝也, 異於前, 凡
事皆托周旋, 有所誤失禮, 且
총섭이란 직책의 정중함이 다른 사찰의 의례적인 호칭과는 실로 다름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구나 예전의 호칭인 승통僧統의 명위名位는 우리 절의 일을 자기 마음대로 처리할 수 없었고, 반드시 장로들의 지시를 받아 임명하였기 때문에 그다지 사람을 가려 뽑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총섭이란 직임은 예전과는 달라 모든 일을 맡아서 처리하니,잘못하는 일이 있으면 예의를 잃고 또
損害不少. 且寺臨雄州巨關, 非特
來往僧俗之煩多也, 車蓋相連,
絡于松門, 非其任, 不可以爲任. 所
以僉議擇其知事能文學堂
重者, 以代其任, 而欲敍其事爲
規 而成冊書, 列乎其任人名字,
傳於久遠. 子幸爲我序之.”余曰然.
“且以吾之所遊者言之, 夫以一林一
巒一木一石之自得於天者 論之,
何必取於伽倻五臺金剛頭流
之勝妙也? 而小巘淺麓, 亦 有勝
妙者存焉, 則金剛頭流伽倻五
臺, 以小巘淺麓而已. 夫以 小巘
淺麓, 無處無之, 則伽倻五臺
金剛頭流, 亦無處無之, 何必 裏
粮趼足, 而疲弊追逐於百里千
里之外哉? 故曩時遊方者之 所
以遊者, 非吾所以遊也; 遊方者之所
작은 산봉우리와 얕은 산기슭일 뿐이리다. 작은 산봉우리와 얕은 산기슭은 없는 곳이 없으니, 가야산, 오대산, 금강산, 두류산도 없는 곳이 없는 셈입니다. 굳이 식량을 싸 가지고 발이 부르트도록 걸어 지친 몸으로 백 리, 천 리 밖을 찾아다닐 필요가 있으리오. 따라서 예전에 제방을 다녔던 이들이 다니던 목적은 내가 다니는 목 적이 아니고, 제방을 다녔던 이들이
謂勝妙者, 非吾所謂勝 妙也. 吾所
謂勝妙與所以遊者, 何也?人也, 在於
人而有賢且能 者也. 今寺之擇人,
遞代其任, 奉享
仙廟, 守護常住, 可不宜哉? 故古
人云: ‘謀事在人.’ 又云: ‘道由人弘.’ 誠
哉言乎!” 晦玄長老 曰:“余曾讀
司馬氏諫院記曰:‘書其諫員名,
刻于石,而後之人, 指其名而議
之曰: 某也忠, 某也詐, 某也直, 某也
曲.’ 今書列任 人名字,傳於久遠,
後之人亦指某名而評之曰:‘某
참으로 옳은 말씀입니다.”
회현 장로가 말하였다,
“내가 사마광司馬光의 「간원제명기諫院題名記」를 읽어 보았더니, ‘간원諫員의 이름을 쓰고 돌에 새기노니, 후세 사람들이 그 이름을 가리켜 논평하기를, 아무개는 충성스러웠고 아무개는 거짓되고 아무개는 정직하고 아무개는 사특하다고 할 것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직책을 역임한 사람들의 이름을 써서 후세에 길이 전 하면, 후세 사람들이 또한 아무개의 이름을 가리키며 논평하기를,
爲總攝也,享 廟護寺, 賢且
以禮;某爲總攝也, 失禮且損
害常住.’芳臭俱傳於 久遠, 其
爲任者, 可不愼哉? 其擇任也, 又
豈可泛忽也哉? 而其爲 序而規
之也, 豈非扶護伽藍之大段關
係者耶?” 余聞其言而思之, 自
有不謀而㳷合於心者,曰:“不亦善
夫!”而記其言,爲之規戒 而敍
之.
大韓光武四年庚子四月上
澣, 湖西歸禿鏡虛惺牛謹識.
내가 이 말을 듣고 보니 생각지도 않았는데 은연중 내 마음과 맞는 것이 있기에“또한 좋지 않은가!”라 하고, 주고받은 말을 기록하여 규계하고 서문을 삼노라.
대한 광무 4년 경자년(1900) 4월 상순에
호서 승려 경허성우는 삼가 쓰노라.
御下
敎旨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扶
宗樹敎國一大禪師僧風糾正八
道都揔攝大覺登階禮峰堂
洪燁 自癸巳八月一日行職。至丁酉元月二日淸旦遞等。 下皆倣此
임금이 내린 교지(御下敎旨)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부종수교 국일대선사 승풍규정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예봉당 홍엽
계사년 8월 1일부터 행직行職하여 정유년 섣달 이튿날 아침에 체직遞職하였다. 아래도 모두 이와 같다.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晦玄堂錫佺 自丁酉元月淸旦至戊戌八月一日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湛海堂德基 自戊戌八月一日至庚子淸旦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회현당 석전
정유년 섣달 아침부터 무술년 8월 1일까지 직책을 맡았다.
자헌대부 축성원당수호 국일대선사 팔도도총섭 대각등계 담회당 덕기
8월 1일부터 경자년 8월 1일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月影堂富潤 自庚子淸旦至八月一日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龍谷堂典昕 自庚子八月一日至辛丑八月一日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鶴庵堂聖箴 自辛丑八月一日至癸卯淸旦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大
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普明堂智讃 癸卯淸旦至甲辰淸旦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
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一淡堂桂煥 甲辰淸旦至乙巳淸旦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
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春谷堂玟悟 乙巳淸旦至丙午淸旦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一
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九潭堂奉蓮 丙午淸旦至丁未七月晦日
資憲大夫祝聖願堂守護國
一大禪師八道都揔攝大覺登階
융희 원년 정미년 7월 그믐에 대한십삼도사찰도총섭·종무원대종정은 위촉하노라.
구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김경산
기유년 7월 그믐에 교체되었다.
육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오성월
기유년 7월 그믐에서 신해년 섣달 아침까지 직책을 맡았다.
육군사찰총독 범어사섭리 추일담
신해년 섣달 아침부터 그해 10월 17일까지 직책을 맡았다.